‘뉴파워 렉스턴W’ ‘뉴 맥스크루즈’ ‘LF쏘나타 하이브리드’ ‘K9 페이스리프트’ ‘쏠라티’ ‘K5 하이브리드’
지난 9월부터 이달까지 출시됐거나 출시 예정인 국내 자동차 브랜드의 신차 이름이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전부 외래어라는 것. 지난 달 출시된 현대자동차의 미니버스 쏠라티는 ‘편안한’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다. 대형 SUV 시장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쌍용자동차의 렉스턴(Rexton)은 어떤가. 렉스턴은 왕가·국왕을 뜻하는 라틴어 ‘Rex’와 품격·기풍을 뜻하는 영어 ‘Tone’의 합성어다.
이처럼 현재 시장에 나온 국산 브랜드 차량 전체 77종 가운데 우리말 이름을 가진 차는 단 한 대도 없다.
우리말 이름을 가진 차종은 단종 모델인 쌍용차 무쏘가 마지막이었다. 무쏘는 코뿔소를 뜻하는 순 우리말 ‘무소’를 변형한 이름이다. 무쏘는 1993년 출시돼 2005년 단종됐고 이후 10년 동안 출시된 수많은 국산 차량 가운데 우리말 이름을 가진 차종은 단 한대도 없었다.
◇글로벌 시장 트렌드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서 경쟁하는 우리 업체의 상황을 생각하면 글로벌 트렌드를 무시할 수는 없다.
업계 한 관계자는 외국어 명칭을 고수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말 이름은 외국인들이 기억하기에 한계가 있다”며 “그들에게 친숙한 단어나 알파벳 숫자 조합이 브랜드를 각인시키기 좋다”고 말했다.
이어 “혹여 내수용과 수출용 이름을 다르게 하면, 이름을 굳이 바꾼 이유에 대해 부정적으로 의심할 우려가 있는 등 신뢰도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과거에는 우리말 이름을 가진 차종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1982년 새한자동차가 출시한 ‘맵시나’ 1997년 대우자동차에서 나온 ‘누비라’ 1998년 삼성상용차가 내놓은 ‘야무진’이 그 예다. 하지만 이들 차종은 당시 수출보다는 내수시장을 공략할 목적이 강해 오늘날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자동차 기술자체가 해외에서 이식된 산업”
최초의 국내 양산차량인 현대자동차 ‘포니(Pony·조랑말)’부터 최근 출시된 쏠라티까지 외래어로 된 차 이름은 업계의 뿌리 깊은 관행이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예전부터 순 우리말을 차명으로 썼다면 계속 우리말을 알파벳 철자로 바꿔서 썼을텐데 애초에 시작 자체가 그렇지 않았다”며 그 이유로는 “자동차 산업 자체가 국내에서 자생한 산업이 아니고, 미국 기업의 기술 원조를 받아 시작하는 등 이식된 자동차 문화 자체가 철저히 서구식 문화여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우리 말 ‘무쏘’는 성공작
오히려 업계에서 ‘이질적’ 관행에 속하는 우리말 이름 차량은 ‘이름값’에 구애받지 않고 시장에서 롱런했다. 무쏘는 단종되기까지 국내 시장에서 총 26만대가 팔린 베스트 셀링카다.
무쏘는 영국 버밍엄 모터쇼에서 4륜구동부문 디자인상을 수상할 만큼 독특한 외관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받았다. 엔진 역시 검증된 벤츠사 2.9ℓ 직렬 5기통 디젤 엔진을 사용해 당시 경쟁차종에 비해 고속에서 남다른 가속성을 뽐냈다. 결국 디자인과 성능이 뒷받침되면 차량 이름 때문에 시장에서 차별받을 가능성은 적다.
지난해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가 만든 자동차는 452만대다. 우리나라는 10년 연속 세계 자동차생산국 5위 자리를 지킨 자동차 산업대국이다. 더 이상 시장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추격자가 아닐 수도 있다. 자기 고유의 문화를 배제한 ‘글로벌’ 전략은 ‘세계적’이지 못하다.